[공글] '몽돌'로 기억할 글쓰기의 자세
[공글] 수업은 "몽돌은 처음부터 몽돌이었을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선생님이 보여준 몽돌은 큰 바둑알 같기도 하고 투박한 외투의 검은 단추 같기도 했다.
만지면 매끄러우면서도 한번 짚으면 놓기 싫을 것만 같이 생겼더랬다.
거제도의 학동의 해변에는 그런 몽돌이라는 돌이 많다고 한다.
필경 몽돌이 그렇게 맨질맨질한 몸의 질감을 가지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학동 몽돌 해변에서는 몽돌이 바닷물 속에서 자그락자그락 부대끼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오랜 시간 부대끼고 구르고 뜨거운 햇볕을 받아내는 지난한 과정을 지나 몽돌은 몽돌이 된 것이다.
글쓰기는 이러한 몽돌의 몽돌다워짐의 과정과 같다는 것이다.
이는 좋은 작가들이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뒷받침 되었다.
선생님이 언급하신 작가들의 세가지 글쓰기론은 아래와 같다.
첫째는, '글쓰기는 철공을 갈아 바늘을 만드는 것과 같다'는 한비야의 철공론이다.
둘째는, '글쓰기는 바늘로 땅에 우물을 파는 것과 같다'는 오르한 파묵의 바늘론이다.
셋째는, '글쓰기는 초목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는 다산의 문장론이다.
(좀 더 찾아본 내용은 아래에 기록하였다.)
수업의 프롤로그에서 다시금 깨닫게 된다.
글쓰기는 순간적으로 한 줄기 영감을 받아 일필휘지로 적어내려가는 천재적 유희가 아니라 일종의 노동과도 같이 인내와 훈련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글쓰기가 무엇인가에 있어서 읽히는 '글'이라는 정체를 가지게 하기까지 나의 자세에 대해 짚어주고 있다.
쉬운 지름길을 좋아하고 노력대비 효율적인 결과물을 얻기 위한 전략을 좋아하는 성정의 나에게 일침하고 있다.
혼자만 알아듣는 옹알이와 같은 끄적임이 아니라 타인과 온전히 소통하는 글쓰기의 싹을 틔우고 싶다.
묵직한 철공을 받아드는 심정으로, 바늘을 들고 겨울 땅을 파고자 마음 먹은 심정으로,
꽃을 틔우기를 꿈꾸면 하나의 씨앗을 심는 심정으로 이제 묵묵히 글쓰기를 위한 노력이 이어가야겠다.
투박하고 거친 바위 하나 들었지만, '몽돌'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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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비야의 철공론
나는 글쓰기는 철공을 갈아서 바늘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지칠 정도로 너무나 더디지만 애를 쓰는 만큼 반드시 좋아진다는 거다. 내 첫 책 '바람의 딸' 시리즈와 <지도밖으로 행군하라>를 비교해 보라. 내가 보아도 글이 좋아졌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이것이 바로 그동안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그토록 몸부림치고, 가족 및 친구들을 괴롭히고 기자와 편집자들에게 비굴했던 지난 10년간의 결과다. 앞으로 10년 후면 지금의 철공이 훨씬 더 바늘에 가까운 모습이 될 것을 굳게 믿으며 오늘도 미련하게, 그러나 기꺼이 철공을 갈고 있다
한비야 <그건, 사랑이었네> 116p 中
* 오르한 파묵의 바늘론
파묵은 ‘수도승 같은 작가’다. 그는 “소설을 쓰기 위해 남은 생애를 수도승처럼 방 한구석에서 보낼 수 있다”고까지 말한 바 있다. 그는 소설을 쓰는 것을 인생과 동일하다고 보고 있으며, 소설의 세계는 그에게 ‘일종의 종파’와 같다. 그의 소설을 번역한 이난아 한국외국어대 연구교수는 “파묵은 소설을 쓰든 안 쓰든 매일 10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있는다”면서 “그는 ‘바늘로 우물을 파듯이 글을 쓴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진우 기자 <문명충돌 고민한 ‘터키 문학의 기수’ 오르한 파묵> 기사 中
* 다산의 문장론
사람이 문장을 지님은 초목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 나무 심는 사람은 처음 심을 적에 뿌리를 북돋워 줄기를 안정시킨다. 이윽고 진액이 돌아 가지와 잎이 돋아나, 이에 꽃이 피어난다. 꽃은 갑작스레 얻을 수가 없다. 정성을 쏟아 바른 마음으로 그 뿌리는 붇돋우고, 도타운 행실로 몸을 닦아 그 줄기를 안정시킨다. 경전을 궁구하고 예법을 연구하여 진액이 돌게 하고, 널리 듣고 예(藝)를 익혀 가지와 잎을 틔워야 한다. 이때 깨달은 바를 유추하여 이를 축적하고, 축적된 것을 펴서 글을 짓는다. 이를 본 사람이 문장이라고 여기니, 이것을 일러 문장이라 한다. 문장이란 것은 갑작스레 얻을 수가 없다.
정민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64p 中